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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내 책을 학습하는 대가, 내 몫은 16만 원이었다

· 약 4분
Datapopcorn CEO / AI automation educator

출판사에서 네이버 AI 모델 학습용 데이터 제공을 검토한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공저자 정산까지 계산해 보니 제 몫은 약 16만 원이었습니다. 이 금액은 책 전체의 가치가 아니라 계약 구조가 매긴 데이터 제공의 정산액입니다. 그래도 숫자를 눈앞에 놓고 보니, 그 구분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습니다.

자동화 책이 AI 학습 데이터가 된다는 메일

메일의 대상 도서는 제가 공저로 쓴 n8n이 다 해줌입니다. 한빛앤은 네이버와 AI 모델 학습용 도서 데이터 제공 계약을 검토 중이고, 네이버 측 검수와 저자 의견 확인을 거쳐 최종 제공 도서를 정한다고 안내했습니다.

제공 목적도 적혀 있었습니다. 책 원문을 이용자에게 그대로 보여 주거나, 상업 서비스에서 원문처럼 제공하는 방식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대신 AI가 문장 구조와 개념 설명 방식을 익히는 학습용 데이터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자동화를 설명한 책이 AI 학습 데이터가 된다는 사실은 묘하게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n8n으로 반복 업무를 줄이는 법을 썼고, 그 글이 이제 AI가 답을 만드는 방식에 조금이라도 섞일 수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독자가 한 명 더 생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고른 설명 순서와 예시가, 전혀 다른 형태로 계속 작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계약서의 계산식은 16만 원으로 끝났습니다

메일에 적힌 기준은 도서 정가의 30배였습니다. 여기서 제반 경비 20%를 공제하고, 남은 금액을 출판사와 저자가 5:5로 나눕니다. 공저 도서는 저자들 사이에서 기존 인세 배분 비율대로 다시 정산합니다.

저는 이 순서를 따라 제 몫을 계산했습니다. 결과는 약 16만 원이었습니다.

이 숫자를 보고 처음 든 감정은 단순했습니다. 재미있고, 조금 씁쓸했습니다.

책 한 권에는 원고 분량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무엇부터 설명할지 정한 순서, 독자가 막힐 지점을 예상해 넣은 보충 설명, 예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한 시간, 덜 중요한 내용을 과감히 뺀 판단이 있습니다. 집필을 해 본 사람이라면 글자 수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 16만 원이 책의 가치라는 뜻은 아닙니다. 계약 방식, 공제, 출판사와 저자의 배분, 공저자 비율이 순서대로 적용된 결과입니다. 그래도 계약의 마지막 줄에 숫자가 찍히면, 사람은 그 숫자를 자기 작업의 가격처럼 읽게 됩니다.

원문을 보여주지 않는 것과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안내 메일에는 계약 기간이 3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계약이 끝난 뒤에는 제공된 원본 콘텐츠 파일을 신규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 조건입니다. 다만 계약 기간에 이미 학습에 사용된 내용은 AI 모델 결과물에 일부 반영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AI가 책을 통째로 복사해 보여 주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은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저자의 글이 모델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설명 방식, 문장의 연결, 특정 개념을 풀어내는 순서가 학습 데이터로 들어간다는 것은, 원문을 읽는 일과는 다른 방식의 재사용입니다.

저자는 무엇을 제공하는 걸까요. 텍스트 파일만 제공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 텍스트 안에 축적된 업무 경험과 설명의 판단까지 함께 제공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계약서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의보다 먼저 계산기를 열게 되는 이유

메일에는 반대 의견이나 권리 관계상 제공이 어려운 사유가 있으면 회신해 달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기한 안에 별도 의견이 없으면 안내된 조건을 기준으로 후속 절차를 진행한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 방식이 이상하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많은 도서와 저자를 상대로 계약을 진행하려면 정해진 절차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저자에게 AI 학습용 데이터 제공은 익숙한 인세 정산과 다른 선택입니다. 내가 쓴 글이 어디까지 쓰이고, 어떤 방식으로 남으며, 그 대가가 어느 정도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메일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찬반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계산하는 일이었습니다. 도서 정가의 30배라는 문장을 보고, 공제와 배분을 거쳐 공저자 몫까지 나눴습니다. 그리고 약 16만 원이라는 숫자를 봤습니다.

AI 시대의 저작권 논의는 커질수록 추상적이 되기 쉽습니다.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지, 학습은 복제인지, 창작자에게 어떤 보상이 적절한지. 큰 질문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자에게 이 문제는 때로 메일 한 통과 정산표 한 장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아마 동의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 이 제공에 동의할 가능성이 큽니다. AI와 자동화를 다루는 책을 쓴 사람으로서, 내 글이 그 생태계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판매하거나 노출하는 계약이 아니라는 안내도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다만 동의와 납득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16만 원이 적절한지, 저자의 선택권이 충분한지, 앞으로 비슷한 계약이 늘어날 때 보상 기준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다음에도 이런 메일을 받는다면 저는 다시 계산기를 열 것 같습니다. AI 학습 데이터 제공이라는 큰 말은 결국 한 권의 책, 한 명의 저자, 그리고 통장에 찍히는 한 줄의 숫자로 실감되기 때문입니다.